1500년대 일본 전국시대에 일본인을 주군으로 섬기던 흑인이 있었다. 이름은 '야스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군이었던 오다 노부나가를 섬기던 가신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일본으로>
프랑소와 솔리에가 1627년 기록한 '일본교회사' 제 1권에서 야스케의 행적을 찾을 수 있었는데, 야스케는 이탈리아 예수회 소속 선교사 알렉산드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 1539 ~ 1606)를 섬기던 노예였다. 출신은 포르투칼령 동아프리카였던 모잠비크라고 기록되어있다. 발리냐노는 일본에 오기 전 모잠비크에 있다가 인도로 건너와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이때 야스케를 데려온 것으로 보고있다. 하지만 모잠비크에서 데려왔는지 인도에서 데려왔는지는 불분명하다.
전국 시대에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등 유럽인이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고, 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도 종자 또는 노예로 데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야스케도 그 중 하나로, 혼자 선교사의 호위를 맡았다고 한다. 호위로써 훈련도 받았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노예였다가 해방되었거나 자유인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1581년 3월 27일, 발리냐노가 노부나가와 만났을 때, 노부나가에게 넘겨졌다.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오타 규이치가 노부나가의 일대기를 저술한 '신장공기(노부나가공의 기록/信長公記)'에는 '크리스천국에서 검은 중이 왔다.(切支丹国より、黒坊主参り候)' 라고 기술되있다. 야스케의 외형에 대해서는 연령은 26세 ~ 27세 정도로 6척 2촌(약 188cm)의 키에 열 사람 몫의 힘을 내며 소처럼 검은 몸을 가진 신체로 묘사되어있다. ('十人力の剛力', '牛のように黒き身体')
1581년 4월 14일, 포르투칼 예수회의 사제인 루이스 프로이스가 예수회 본부에 보낸 연보나, 로렌조 메시아의 서한에 따르면, 교토에 흑인이 있는 것이 알려져 구경꾼이 몰리며 싸움이 일어나 중상자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을 처음 본 노부나가는 야스케가 몸에 먹을 칠한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몸을 씻게 했는데, 야스케의 피부는 희게 되긴 커녕 한층 더 검게 빛났다고 한다.
<흑인, 최초의 사무라이가 되다>
노부나가는 흑인인 야스케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발리냐노에게 양도받아 '야스케' 라는 공식적인 이름을 붙여주고 사무라이의 신분을 붙여 가신으로 삼았다. 야스케는 2년만에 일본어와 일본의 문화를 익혔다고 한다.
신장공기의 저자인 오타 규이치의 후예인 가가 오오타 가문에 전해지는 자필본의 사본으로 추축되는 문서에는 '야스케에게 사택(집)과 카타나가 주어졌고, 때로는 노부나가의 도구를 챙기고 있었다.' 라는 설명도 있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신뢰받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슈 정벌로 부터 귀환하던 중 노부나가가 도쿠가와 령을 통과할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인 마츠라다이라 이에타다가 목격한 것이지만, 일기에는 야스케는 하인이나 연계봉공(계약된 하인/年季奉公)과 같은 종(隷民)이 아니라 계급을 가진 무사였다고 적혀있다. (원문 : 下人や年季奉公人のような隷民でなく扶持もちの士分だった)
<혼노지의 변, 주군을 잃다>
1582년 6월 21일(텐쇼 10년 6월 2일),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인 아케치 미츠히데가 일으킨 반란을 일으켜 같은 달 21일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한다. ('혼노지의 변'이라 부른다)
미츠히데가 혼노지에 침략하여 함락되기 직전에 노부나가로부터 탈출을 명령받았다고 전해진다. 이 후 노부나가의 아들인 노부타다가 있는 니조 성으로 합류하여 노부타다를 지키기 위해 싸우지만 결국 패전하고 아케치 미츠히데군에게 포박된다.
예수회 일본 연보에 따르면 '순찰사가 노부나가에게 준 흑인 노예가 노부나가가 죽은 후 세자의 저택에 가서 상당히 오랫동안 싸우고 있었는데, 이케치의 가신이 그에게 다가가 두려워하지 말고 그 칼을 넘겨라라고 말하니 그 것을 건내주었다"고 한다. (원문 : ビジタドール(巡察師)が信長に贈った黒奴が、信長の死後世子の邸に赴き、相当長い間戦ってゐたところ、明智の家臣が彼に近づいて、恐るることなくその刀を差出せと言ったのでこれを渡した)
가신이 미츠히데에게 야스케를 어떻게 처리할지 묻자 미츠히데는 '흑인 노예는 동물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데다가 일본인 또한 아니기 때문에 죽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 후>
이후 남만사(일본에서 가톨릭 교회를 부르던 말)에 보내졌다. 남만사에 맡겨진 이후 야스케의 소식에 대해서는 사료에 적혀져있는 것이 없으며, 그 행적을 전혀 알 수 없다.
다른 지역의 사료 중에 흑인이 등장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포르투칼의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플로이스가 집필한 '일본사'의 오키타나와테의 전투에는, 아리마 진영에 대포를 다룰 수 있는 흑인이 있다고 적혀있다. 또한 1605년 무렵 그려진 '스모 유락도병풍'에는 일본인과 스모를 하는 흑인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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